유전성 망막질환,희망 없다 포기 말고 유전자검사 받아야

유전성 망막질환 환자들의 가장 좋은 안내자 변석호 교수


망막이란 무엇이며, 여기에는 주로 어떤 질환이 발생하나요?

망막은 물체의 상이 맺히는 부분으로, 빛을 직접 받아들여 전기신호로 바꿔 뇌에 전달하는 기관입니다. 과거에는 카메라의 필름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는데, 요즘의 디지털 카메라에 비유하자면 CCD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얇은 막 형태이며, 안구 내부의 뒤쪽에 마치 벽지처럼 발라져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 망막의 중심 부위로, 시각세포들이 밀집해 있어 사물의 형태와 색을 인지해 시력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을 황반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망막에는 황반변성, 당뇨망막병증, 망막박리, 황반원공, 황반주름, 망막색소상피변성증 등 다양한 질환이 발생할 수 있으며, 성인에서는 노인성 황반변성과 당뇨망막병증이 가장 대표적인 망막질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황반변성이나 당뇨망막병증은 실명의 원인 질환으로 자주 꼽히는 병 아닌가요?

당뇨망막병증은 당뇨병 때문에 망막의 혈관이 망가지는 질환으로, 당뇨병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고 혈당 관리를 잘하는 환자들이 점차 많아져서 당뇨망막병증이 심각하게 진행되는 비율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반면 황반변성은 황반에 찌꺼기가 쌓이면서 황반이 손상되는 질환인데, 우리나라의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노인성 황반변성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많게는 80세 이상에서 4명 중 1명꼴로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의료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진 중진국 이상의 국가에서는 실명 원인 1위를 차지하는 심각한 질환인 만큼 고령에서는 황반변성에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인성 황반변성에서 실명을 막을 방법은 없나요?

황반변성의 초기에는 망막 아래쪽으로 찌꺼기가 쌓이기 시작하므로 50세 이상에서는 안과 검진을 통해 이러한 찌꺼기가 있는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본인 눈에 이러한 찌꺼기가 있다면 당장 별다른 증상이 없더라도 주기적으로 자가 눈 검진을 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반드시 한쪽 눈을 가려서 양쪽 눈을 각각 테스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나 보면 단순히 눈이 좀 침침해서 왔다는 어르신들 중에는 한쪽 눈이 거의 안 보이는 지경인데도 본인은 전혀 모르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한쪽 눈에 질병이 서서히 진행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적응하게 되거든요. 한쪽 눈을 가렸을 때 물체가 찌그러져 보이거나 일부가 보이지 않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반드시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항체 주사치료를 통해 병의 진행을 억제하는데, 병이 진행될수록 후유증이 많이 남고 시력도 잘 회복되지 않으므로 자가검진을 통해 이상을 빨리 발견해서 적기에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망막색소상피변성증은 개그맨 이동우 씨를 실명에 이르게 한 원인으로 알고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병인가요?

편의상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망막색소변성증, 망막색소상피변성증 등으로 설명하지만, 의학적으로 보다 정확한 용어는 유전성 망막 이영양증입니다. 유전자의 이상으로 망막의 세포가 변성되어 시력이 점차 떨어지다가 결국은 실명에 이르는 진행성 질환입니다. 부모와 상관없이 본인 때부터 단독으로 유전자 이상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부모로부터 이상 유전자를 물려받는 경우에도 상염색체 우성 유전, 상염색체 열성 유전, X염색체 유전 등 유전 양상이 다양합니다. 현재까지 유전성 망막 이영양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진 원인 유전자만 300개가 넘기 때문에 사실상 단일 질환이 아니라 300가지 이상의 질환이 있는 셈입니다.


유전자의 이상이 원인이라면 어릴 때부터 이 병을 알아챌 만한 특징적인 증상이 나타나나요?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어두운 곳에서 잘 보이지 않는 야맹증이며, 병이 진행되면서 점차 시야가 좁아져 볼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듭니다. 일부 환자는 어릴 때부터 저시력인 경우도 있고요. 대체로 어릴 때부터 증상이 나타나지만, 이상 유전자의 종류에 따라 병의 진행 양상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병의 진행이 굉장히 빨라서 10대 때 실명에 이르는 환자가 있는 반면, 비교적 오랫동안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60-70대에 눈의 이상을 느끼고 안과를 찾았다가 병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워낙 치료 방법이 없다 보니 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한 목적으로 비타민A 복용 등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뚜렷한 효과를 보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일부 환자에서는 비타민A 과량 복용이 병을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최근 도입된 유전자치료가 유일합니다.



망막 건강을 위한 Dr. 변석호의 특급 조언


망막은 신경조직이라 한번 손상되면 재생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진단 및 치료 시기에 따라 치료 효과가 크게 달라진다. 대부분의 망막질환은 통증 없이 오로지 시각 관련 증상만 나타나므로 주기적인 자가검진을 통해 눈의 이상을 확인해야 한다. 한쪽 눈을 가렸을 때 물체가 찌그러져 보이는 변형시, 눈앞에 뭔가 떠다니는 비문증, 불이 번쩍하는 광시증 등이 나타난다면 반드시 전문의의 진료를 받도록 한다.

👉 흡연은 황반변성의 확실한 위험인자 중 하나다. 백해무익한 담배, 꼭 끊자!

👉 강한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될 경우 망막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야외활동 시에는 선글라스, 모자, 양산 등을 활용하고, 자외선이 강한 날에는 야외활동을 피하는 것이 좋다.




유전자치료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인가요? 많은 환자들에서 효과를 볼 수 있나요?

고장 난 유전자가 있는 환자의 세포에 AAV(Adenoassociatedvirus)라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정상 유전자를 넣어 고장 난 유전자를 대체하는 치료법으로, 정교한 수술을 통해 이 바이러스 용액을 망막의 아래쪽에 주입합니다. 치료 직후부터 병의 진행이 멈추면서 시기능도 일부 개선되어 야맹증이 많이 사라지고 시야가 좀 더 넓어지는 등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추가 치료가 필요없고 이론적으로는 그 효과가 영구적입니다. 

실제로 치료제 개발 이후 약 5년간의 추적 관찰 결과, 치료 효과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개별 유전자에 대한 이상을 교정하는 치료이므로 대상 환자가 한정되어 있고, 치료 대상이 되는 망막 세포가 어느 정도 살아 있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20-30개의 유전자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FDA의 허가를 받은 첫 유전자치료제인 RPE65 유전자 변이에 대한 치료제가 도입되어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유전자치료제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환자로선 일단 유전자검사부터 받아야겠네요.

유전성 망막질환 환자들은 실질적인 치료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후에는 병원에 잘 내원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전자검사를 받은 환자들도 그리 많지 않고요. 그러다 보니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는 유전성 망막질환 환자의 규모나 어떤 유전자의 이상이 가장 많은지에 대한 명확한 통계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지금은 유전자치료의 대상이 되는 환자가 극히 일부지만, 약제 개발을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므로 치료 가능한 환자는 점차 많아질 겁니다. 아마 수백 개의 유전자 이상 가운데 환자 비중이 높은 것부터 순차적으로 치료제가 개발될 가능성이 높겠지요. 결국 유전자검사는 본인이 유전자치료의 대상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유전자치료제 개발에 보탬이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변석호 교수(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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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성 망막질환, 노인성 황반변성, 당뇨망막병증 등 망막질환을 전문으로 다루며, 유전자치료에 대한 기초 및 임상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뚜렷한 치료제가 없는 진행성 망막질환을 진단받은 환자들, 특히 머지않아 시력을 잃게 될 어린 환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그의 연구 열정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 전문 지식을 앞세워 섣불리 판단하고 결정하기보다는, 환자가 정말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각각의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는 안내자가 되는 것이 그의 치료 목표이자 진료철학이다. 환자는 그에게 끊임없이 가르침을 주는 또 다른 스승이라고.